꾹의 블로그
연곡사는 꾹이, 가장 많이 찾은 절집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지리산 자락을 찾을 때면 천은사, 쌍계사, 화엄사, 대원사 등의 절집이 떠오르지만 꼭 빼먹지 않고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따금 혼자이고 싶거나 호젓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동부도, 북부도 이르는 돌계단에 앉아서 구름과 햇살의 숨바꼭질을 보고 있노라면...

다음은 2000년 쯤에 적었던 글이지 싶다. 사진들은 다시보니 어찌나 엉망인지... 삭제해버리고 하나만 올려본다.

지리산 연곡사

연곡사는 조용하다. 언제 이르더라도 조용히 객을 맞는다. 하동에서 시작되어 쌍계사와 구례로 갈리는 길에서 10여 분을 더 달려왔을까? 피아골로 들어서는 길로 다시 십 여 분을 달리면 피아골의 시작인 직전리 조금 못미친 곳에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는 연곡사에 이르게 된다. 오르는 길의 좌측으로는 교과서에서 봄직했던 계단식 논들이 계곡 사이로 이어진다. 피아골이란 지명은 식용 피를 가꾸던 곳이라는 설과, 한국전 당시 수많은 전사자들이 흘린 수많은 피가 계곡을 붉게 물들였다는 설로 나뉜다. 실은 전자의 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있기 때문에 후자는 전설처럼 따라붙는 수식어인 셈이다.

연곡사는 경덕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연기조사는 화엄사의 창건 설화와도 연관되는데, 이로인하여 연곡사는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에 자리잡은 최고의 사찰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창건되었지만 역시 임난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대에 이르러 태능이 중건하였다. 하지만 왕실의 신주목(위패를 만들 때 사용되는 나무)으로 연곡사 근처의 밤나무를 생산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19세기 말엽에는 스님들이 모두 절을 떠나고 말았다. 밖으로는 외세의 수탈이 시작될 무렵이었고, 안으로는 사회전체에 커다란 동요가 일었을 즈음이니 어떠했을지 짐작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방치되다시피했던 연곡사는 한국전쟁 때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최근들어 복원사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때문에 연곡사의 절집들은 옛스런 멋은 없으나 한적함은 여전히 갖추고 있다. 80년대 말까지는 요사채와 몇기의 부도와 부도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옛부터 연곡사를 찾았던 분들은 최근들어 너무 뒤숭숭해졌다고들 불평을 내 뱉으시지만 꾹은 그래도 아직은 연곡사가 고즈넉함을 잃지 않고 있다 생각한다.

옛 구조물이라고는 찾아볼 것 없는 연곡사지만 동부도, 북부도, 서부도와 삼층석탑, 부도비 등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어쩌면 현대에 세워진 흉측한-적어도 꾹에겐 그렇다. 너무 화려하여 되려 천박해보이는 울긋불긋한 단청으로 물든...- 절집처럼 되고 말았을지도 모를 연곡사의 모습을 온전히 지키려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 옆으로 눈길을 돌리면 삼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석탑은 주전 앞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가람배치(일탑일금당 양식)이므로 과거의 규모가 어떠했을지 대강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화엄사의 석탑들과는 달리 탑신에 별다른 조각없이 간결하게 조성되었다. 3층과 2층의 체감률이 상당한 편이지만 서너 발짝 뒤에서 바라보면 되려 안정감있는 구조로 여겨질만큼 조화롭게 보인다. 별다른 장식이 없어 다소 심심하지만 지붕귀의 살짝 치켜올림이 그런 단숨함을 깨우는 액센트처럼 작용한다. 67년에 최종 복원하였는데, 당시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사찰들과 달리 연곡사는 앞마당이 넓다. 지난 6월, 아마 스님들도 여기서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까만밤을 빨갛게 물들이지는 않았을런지... 동양화의 여백처럼 허허로운 공간이 연곡사를 찾는 하나의 멋이라 생각된다.

대웅전 뒤로 난 산길을 따라서 다소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면 '부도 중의 부도'라 칭송받는 동부도를 만나게 된다. 도선의 부도라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어느 하나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으니 차라리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낫겠지. 거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부도는 빼어난 조각 솜씨로 보는 이들로부터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사각의 받침돌 위에 팔각 2층 기단을 두고 겹겹이 돌을 쌓아 만든 동부도는 한군데도 그냥 지나치지 않은 돌다룸 솜씨가 놀랍도록 정교하다. 하대석, 중대석에는 쉴틈없는 조각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하대석 각면을 지키고 있는 사자와 중대석에 새겨진 팔부중상 조각은 돌을 나무인양 다루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치 건물의 지붕인 듯 다듬어낸 지붕돌의 조각을 보노라면 선인들의 솜씨에 넋이 나갈 따름이다. 마치 목조 건물을 다루듯 서까래와 부연은 물론이고 기왓골과 막새까지 보여주고 있다. 빈틈없는 솜씨에 놀란 가슴에 단 하나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상륜부에 조각된 네 마리의 가릉빈가이다. 머리가 모두 잘려나가 버린 것이다.

잠시 긴 한 숨이 이어지고... 가릉빈가의 머리만 그대로 자리를 하고 있었더라면, 그야말로 국보중의 국보가 아니었을까. 천만다행인 것은 일제강점기 때, 동부도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반하여 이를 일본으로 반출하고자 하였지만 미수에 그쳤던 사실이다. 하긴 석굴암 본존불마저 어떻게 해보려던 이들이었으니 이 아름다운 동부도를 그대로 놔둘리가 없었겠지.

동부도의 화려함에 잃었던 정신을 차려보면 그 옆에 위치한 동부도비로 눈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귀부와 이수만 놓여있는 동부도에는 비신이 없다. 그러나 거북의 등에 날개를 조각한 점은 이채로운데, 오른쪽 앞발을 살짝 들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동부도 옆에 자리를 잡고 있어 동부도비로 불리긴 하지만 동부도와의 연관성을 입증할 자료는 아직 없다고 하며, 고려조 작품으루 추정하고 있다. 동부도의 화려함에 빠진 이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럽겠지만, 부조화속의 조화라고 했던가? 고려인들의 소박하고 아담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설레는 가슴을 뒤로하고 다시 동부도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분여를 오르면 가쁜 숨을 고르기도 전에 아래의 동부도를 그대로 옮겨놓지 않았나 싶을만큼 닮은 북부도를 만나게 된다. 현각선사 부도비와 관련지어 현각선사의 부도가 아닐까 추정하는 학자들이 여럿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주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

이내 호흡을 다듬고 하나씩 살펴보면 그제서야 동부도와는 조금씩 다른 멋에 취하게 된다. 보존이 잘못되어서인지 조각들의 섬세함은 동부도보다는 조금 떨어짐을 쉬 발견하겠지만 동부도의 화려함이 너무 강해서이리라. 하지만 좀 더 정확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사천왕상이나 가릉빈가의 모습에서는 북부도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부도와 마찬가지로 상륜부의 가릉빈가는 네 마리 모두 목이 잘려나가는 수난을 겪었으나 중대석에 앙각된 가릉빈가의 모습은 생동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운좋게도 2001년 찾았던 북부도는 보호대를 두르지 않아 사진 찍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이내 다시 보호대가 둘러져 다시 찾은 2002년에는 저으기 실망하고 말았지만.

위의 가릉빈가 사진은 갤러리에 '찬란한 비상'이라는 제목을 걸어 올려두었다. 2001년 8월 찾은 연곡사는 해와 구름의 잦은 숨바꼭질 틈에 있었다. 겨우 북부도까지 가쁜 숨을 몰아가며 올랐는데, 구름 속으로 숨어 버린 태양 때문에 한참을 기다려 겨우 빛이 나와 원하던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별다른 걱정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숲속에 삼각대를 펼쳐두고 태양이 나오기를 기다려 촬영했던 그 날과 같은 열정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겠지.

다시 북부도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소요대사 부도(서부도로 불려진다)와 만나게 된다. 통일신라에서 고려조로 추정되는 동부도, 북부도에 비하여 서부도는 몸집이 다소 둔해보인다. 뭐 동부도나 북부도 역시 날렵한 맛은 덜하지만 서부도는 조각 수법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지붕돌의 새김은 간결해졌으며, 받침돌 역시 밋밋하다. 사천왕과 인왕상을 몸돌에 앙각해 두었는데, 조선조에 만들어져서인지 보존상태는 좋은 편이다. 곁으로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부도들이 몇 더 있다.

연곡사. 꾹은 지리산 자락을 떠올리면 항상 연곡사의 부도들을 생각한다. 더 이상 그들에게 돌은 돌이 아니었던 선인들의 손놀림과 함께... 올해도 뜨거운 여름이 오면 다시 연곡사를 찾을 작정이다. 늘 찾았던 연곡사행과는 달리 아침일찍부터 쉬엄쉬엄... 그렇게 필름에 연곡사를 담아봐야지.

poiu 06/06/03 12:09  R X
바로 이런 글이어요. 계속 올려주삼...
이제 홍비 태우고 본격적으로 여행 다니셔야죠.
사진과 재미난 여행기 부탁하옵니당~~~~~~~~
06/06/03 13:44 X
다음주부터 시작한답니다. ㅋㅋ
꼭 가보고 싶었는데, 잊고 있던 곳이 있어요.
신문에서 일깨워주더군요. 뎅겨와서 올려보죠.
준쓰(endwar) 06/06/04 17:07  R X
좋은 포스팅입니다. 전번에 꾹님께서 연곡사 얘기를 하셔서 찾아보니 신라의 위덕왕 때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더군요. 정말 오래된 절 중의 하나입니다.

일전에, 그러니까 중학교 때 가족들과 함께 절을 참 많이 찾았습니다. 종교적으로 다녔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 방문하고는 했는데 어찌나 많은 절들을 다녔던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답니다. 대학 입학 초 부터 사진을 위해서 해남에 있는 절 들도 찾아다니곤 했었죠. 기억이 새록새록..^^
06/06/04 18:04 X
신라때 지은 것은 다 불타버리고 전쟁 후에 재건했답니다.
해남쪽이면 대흥사나 미황사겠군요.
대흥사 올라가는 길은... 눈이 쌓였으면 더없이 운치있죠.
미황사의 다양한 동물 장식은 웃음을 자아내게만들죠.
올해 안에 두 절집 모두 다시 찾을 작정입니다.
어디 찾아보믄 대흥사, 미황사 사진들도 있을텐데...ㅋㅋ
준쓰(endwar) 06/06/05 11:21  R X
어제 볼 일이 있어서 평촌역에 다녀올 계획이었습니다. 문득 '꾹'님이 생각나서 전화를 해 보니 안 받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실례가 될까 싶어 문자를 보냈더니 꾹님 와이프께서 답장을 주셨습니다..;;

너무나도 죄송한데 다행히 '12시쯤 꾹님 오시니까 그 때도 괜찮으면 오세요. 이 사람이 워낙 밤 공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라고 답장이 오더군요.^^

ㅋㅋ 웃었습니다. 밤 공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06/06/06 01:04 X
가끔은 아침 공기도 좋아한답니다. ㅋㅋ
오늘은 안사람이랑 아기랑 함께 삼척을 다녀왔답니다.
목적지를 코 앞에 놓고 다시 돌아와야했던 안타까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암튼 그랬답니다.
저는 늘, 12시 지나서 시간이 나는 편이랍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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