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의 블로그
몇 달 전이었을 거다. '국민참여 박석신청에 대해 안내드립니다'란 제목으로 발송된, '노무현 재단'이 발송인으로 표기된 메일을 받았다. 묘역에 깔리게 될 박석. 며칠 생각하다 마땅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아 망설이고 주저하다 결국 '사랑합니다'라는 짧은 글로 신청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간을 흘렀다. 여러 형태의 죽음이 있겠지만 '자살'에 대해선 참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암튼 계속 시간은 흘러갔다.

홍비와 함께 한 여행길에 그 아이의 기억에 남을 어딘가를 같이 가고 싶었다. 무엇이 기억에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가신 후 나와 엄마의 손을 잡고 국화를 올려드렸던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있을 홍비와 봉하마을로 향하기로 했다. 어디든 아빠와 함께 가면 그저 기분이 좋아지는 홍비와 그렇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부르며 유치원 친구들 이야기에, 엄마 흉보기, 아빠 흉보기... 재잘거리는 홍비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바라본 들판은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한가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충실하게 목적지로 인도하는 네비게이션은 남은 거리가 얼마되지 않음을 알려준다. 잠시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가는 곳곳 봉하마을로 향하는 정리된 이정표들이 있어 그리 큰 불편은 없다.

이제 노오란 바람개비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봉하마을이 시작됨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얼마 전 1주기 행사가 있었기에 여기저기 그것을 알리는 현수막 들이 붙어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그리움, 남아있는 자들의 각오들을 엿볼 수 있는 현수막들을 하나씩 읽어보는 홍비는 특유의 재잘거림으로 궁금한 것들을 물어온다. 알기 쉽게 대답은 해주지만 궁금증을 해소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다지 넓지 않은 주차장이긴 했으나 평일임에도 빈 곳이 거의 없었다. 한 바퀴 휙하니 돌아보는데 마침 길을 나서는 차량 자리로 빈 곳이 생겼다. 무사히 주차를 하고서 홍비의 옷매무새를 만져주고는 함께 차에서 내린다.

유명한 봉하빵을 판매하는 곳도 눈에 들어오고 마을 안내판도 보인다. 여전히 노란 바람개비들이 돌아가는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보면 노대통령 기념관이 새로 개관했음을 알리고 있으며 사저로 올라가는 길도 나온다.


tv에 자주 등장했던 공간에 올라섰다. 추모탑이 보이고 여기저기서 올려놓은 꽃들이 가득하다. 홍비를 앞에 놓고 가져온 폴라로이드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빠는 홍비가 찍어줄께'
홍비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나를 틀 안에 가두었다. 상하좌우 구도도 제법 잘 맞는다. 역시...

'그런데 발이 닿는 곳에 글자들이 있어'
박석을 보고선 홍비가 한 마디 한다. 신기했나보다. 곳곳에 적힌 글들을 제법 익숙하게 읽어나간다. 무언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뜻을 물어보고, 다른 곳에는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아야만 하는 성격 탓에 그리 많이는 읽어나가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기억된 대통령 할아버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지...

내 박석은 어디에 있을까? 문의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사랑합니다'란 글이 어디 한 두 개 뿐일까? 여기저기 다른 분들이 남긴 글들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홍비와 손을 잡고 걸으며 이글 저글을 읽어나갔다.


이윽고 부엉이 바위 앞에 섰다.
'할아버지께선 저기서 떨어지셨어...'
'왜?'
'글쎄..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왜 뛰어 내리셨어?'
'글쎄... 아빠도 궁금해...'
'저기까지만 올라가 볼까?'
'그래, 저기까지만'
다소 높아보이긴 했지만 오르는 길이 훤하게 보였기에 홍비는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나보다. 어린 것의 손을 꼭 잡고는 며칠 전 내린 비로 약간은 젖어있는 길을 걸었다. 이따금 정토원까지 다녀오시는 분들이 홍비를 귀엽다 머리도 만져주신다.


정토원 가는 길과 대통령께서 떨어지셨던 곳으로 이어지는 작은 갈림길에 섰다. 내심 정토원 쪽으로 가보고 싶었지만 다섯살 어린 소녀에겐 힘이 들었나부다. 혹시나 미끄러질까봐 꼭 부여쥔 홍비의 손을 이끌고는 방향을 틀었다. 1년 여 시간은 지났고 그가 닿았던 흔적은 어느새 지워져버렸기에 무성히 자란 풀들만 가득하다.


조금은 빨라진 숨을 고르고는 다시 기념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영상 속에선 여전히 친근하고 옳은 소리 그대로 내뱉는 모습 그대로인데... 칭얼 거릴 줄만 알았던 홍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 할아버지의 모습에 집중한다. 기특하기만 하다...





그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민욱 10/07/22 17:51  R X
좀 너무한거아니슈? 5월, 1주기 때 다녀오셔놓고 7월이 다지나가는 지금 포스팅하는 것은..
그나저나 홍비 보고 싶네용.
poiu 10/07/23 11:33  R X
음...
정치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만, 저 노란색을 보면 제 딴에도 생각이 많네요.
홍비는 어디에 내놔도 배경과 참 잘 어울리네요.
F282870 10/07/23 21:34  R X
홍비가 많이 컸네. 점점 엄마도 닮아가는구만.
퀵실버 10/07/25 13:38  R X
홍비, 이제 숙녀네요. 다 컸어용.
miber 10/07/28 14:54  R X
전 어제 다녀왔습니다. 가슴 한 켠이 아련해지더군요.
오셨을 때 연락이라도 주실 것이지...
행복한 작은새 10/07/29 00:41  R X
홍비가.. 너무너무 이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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