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의 블로그
홍비가 태어난 이후 첫 여행을 나섰다. 목적지는 강원도 삼척.

소나무 밭이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한 곳을 떠올려보면 곳들이 몇 있다.
하동 송림이 그 중 으뜸일 것이고 운문사 이르는 길의 해송들도 그럴 것이다.
청렴포의 길쭉한 소나무들은 단종애사를 그대로 전해주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 정도만 알고 있던 내게 rts iii님께서는 삼척의 영경묘와 준경묘를 알려주셨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장관일 것이라고...
언젠가는 꼭 찾아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바쁜 일상에 파묻힌 기억은 한동안 머릿속에서
맴돌기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금요일이었나? 조선일보에 실린 준경묘에 관한 기사는 한 쪽 구석에 쳐박혀 있던
기억의 일부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울산을 방문할 것인지 고민하던 아내의 머뭇거림을 단호하게 잘라내고 우리 세 식구는
처음으로 함께 여행길에 나섰다. 그러고보니 올해의 첫 나들이였다.

당분간 비소식이 없을 것이란 일기예보만 철썩같이 믿은 것이 불찰이었다.
과학을 가르치면서,
바로 며칠 전까지 태백산맥 일대의 푀엔 현상에 대해 설명을 했었음에도...
대관령을 넘어서니 기온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30도 안팎을 넘나들던 기온이
18도까지 뚝 떨어져 버린 것이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정경이 펼쳐지고....
준경묘 입구에 차를 세우고 준비해간 유모차에 홍비를 옮겼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1.8km라는 이정표를 뒤로하고 가파른 콘크리트길을
한발한발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30분 쯤 걸었을까? 땀은 온몸을 덮기 시작했지만 홍비는 어쩐 일인지 쎄근쎄근...
아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캠코더에 나와 홍비를 담기 바빴다.
그럴 즈음...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

우산을 챙겨들지 않고 나선 것은 두 번째 불찰이었다. ㅡ,.ㅡ
어떡하나 하면서도 앞으로 길을 잡았던 우린 결국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로 인해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다시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번개까지 떨어지는 험한 날씨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었으니...
그나마 유모차를 밀고 오르던 길은 나은 편이었다.
비를 맞으며 미끄러지지 않게 힘을주며 내려오는 길이란...

쏟아진 비에 어쩔 수 없이 흠뻑 젖어야했지만 홍비는 유모차의 확실한 방수력 덕분에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차에 옮겨질 수 있었다.
마을 회관 입구에서 젖은 머릴 감으면서도 기분은 최고였다.
숨이 막힐만큼, 주저앉고 싶을만큼 힘든 하산길이었음에도
온몸을 적셔주는 땀과 빗물의 협주는 바쁘단 핑계로 게으르게 살아왔던
나에 대한 질책이지 않았을까?

아내는 준비해간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는 머리를 말렸다.
여벌의 옷이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젖은 몸으로 서울로 길을 잡아야 했다.
몇 번의 칭얼거림이 있었지만 홍비는 내도록 잠을 청했고..

결국 실패한 미션이었지만 왕복 600km의 여정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잡겠지.
언제 다시 준경묘, 영경묘를 찾아갈 수 있을까?

문제는 집에 도착한 이후에 벌어졌다. 100일도 지나지 않은 홍비에겐,
쌀쌀한 날씨와 신나게 쏟아진 소나기는 '감기'라는 불청객을 맞아야만 했다.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하는 콧물과 기침... 가엽기만 하다.
이럴 때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심정이 이해가 된다.
미안하다 홍비야, 씩씩하게 이겨내길 바래.
다음엔 엄마아빠가 준비를 많이하고 조심 또 조심해서 데려갈께...
BK 06/06/06 10:40  R X
오옷... 정말 잊지 못할 여행이 되신 것 같습니다... :)

여행을 정말 좋아하시나 봅니다...

저두 이번 방학 때 시간내서 어디 한번 다녀 올까 하는데...

생각대로 잘 될지 모르겠네요^^
06/06/08 01:50 X
시간내서..라는 생각은 여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최악의 요소들 중 으뜸이지요.
일단 뜨고 보는 겁니다. 여행의 즐거움과 유용성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거지요.
젊어서 여행을 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입니다.
준쓰(endwar) 06/06/07 01:12  R X
아~ 오늘밤 재밌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앞으로 자주 뵙겠네요^^..
06/06/08 01:50 X
심심할 때면 연락하세요^^,
f282870 06/06/14 14:27  R X
발동이 걸린게야. 월요일의 여행은 호젓하니 기분도 내고
차막힘도 피할 수 있으니 제격이죠. 부럽습니다.
06/06/16 22:22 X
발동이 걸리긴 했는데, 성과가 안좋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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